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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생활 속의 QA - Early Testing

검은왕자 2010. 4. 20. 02:02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요즘 가끔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도 QA가 적용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Life QA,
말 그대로 삶의 질을 보증해 주는 것이죠. 일견 장황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소소한 일상 속에서 QA 마인드를 가진다면 조금은 삶이 더 편안해지고 만족스러워질 것 같습니다.

 

일례를 들어볼까요.

지난 토요일, 집사람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뚝섬의 서울숲을 다녀왔습니다.

중랑천을 지나 한강변을 끼고 걷다 보니 봄내음이 물씬 납니다.
성수대교 근처에서 서울숲으로 진입하는 다리 입구에서는 고라니도 뛰어 놉니다.

남들처럼 멋진 DSLR을 가지고 출사를 나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간만에 나온 나들이인지라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어린애 마냥 이것 저것 신기해하고 감탄해 마지 않으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넓은 잔디밭이며, 바람이 불 때 눈처럼 날리는 벚꽃이며, 잘 꾸며진 체육 시설과 예전부터 유명하던 마장(馬場)까지, 많은 것을 담고 싶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심지어는 미리 블로그에 올릴 생각으로 조작(?)된 사진을 연출하기도 했죠.

 

아무튼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멋진 곳을 다녀왔으니 당연히 인증샷을 올려야죠.

데스크탑으로 메모리 카드의 사진을 옮기고 잔뜩 기대에 차서 폴더를 열어봅니다.

 

….

 

사진이 안 찍혔을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카메라에 메모리는 들어있었습니다. 요즘은 안 그러면 경고 메시지가 뜨니까요. ^^

문제는 보시는 바와 같이 사진의 비율날짜 표시였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사이즈도 약간 어색한 16:9 와이드 비율에, 날짜까지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찍혀 나왔습니다.
이래서는 사진을 찍은 시간보다 편집 작업에 시간이 더 걸릴 듯 합니다. 더군다나 제가 공들여 작업을 한다고 해도 남들처럼 깔끔하게 편집이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열심히 찍었는데, 이게 건질 게 하나도 없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집에 있는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찍은 사진을 바로 PC에서 확인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바로 사진의 사이즈를 조정하고 날짜 표시 기능도 미리 해제할 수 있었을텐데!

이게 바로 수도 없이 배우고 떠들어댔던 “Early Testing”의 원리인데!!!
배운걸 이런 데서 써먹지 못하다니... 


다들 아시겠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의 초반부터 테스팅을 수행해 미리 결함을 찾아냄으로써 프로젝트 후반부에 투입될 비용과 시간을 아끼도록 하는 것이 Early Testing의 원리죠. 해외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한 계약 체결 시점에서부터 QA가 투입되어 계약서부터 검증하기도 한다는군요.

 

만약 제가 미리 Early Testing을 수행했다면, 나들이를 나서기 전에 미리 카메라를 점검해서 설정을 조정했거나, 그도 아니었다면 노트북이라도 들고나가서 현장에서라도 다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겠죠.
투입된 리소스를 따져본다면,
카메라를 점검하는 시간이 가장 적게 들었을테고, 비록 노트북을 들고나가는 수고를 하는 것이 두 번째로 많은 투자였겠지만 그에 걸맞는 양질의 산출물을 얻었을 테니, 여러 시간 고생해도 질 떨어지는 산출물을 얻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투자인 셈이죠.
두 번의 좋은 기회를 놓치고 나니, PC 앞에 망연자실 앉아있는 제 모습밖에는 남는 게 없네요.
씁쓸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QA라는 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니네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조금 더 생각해보면 분명 더 나은 품질을 얻을 수 있는 데 말입니다.

아무튼 많은 것(?)을 잃었고, 대신 그만큼 얻기도 했던, 의미 있는 주말이었습니다.

 

Happy Testing! ^^


<짤방은 Early Testing을 거치지 못한 조악한 품질의 산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