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거의 모든 게임 회사가 그렇듯, 우리 회사도 파견직 사원들을 채용해 QA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보통 파견직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맹목적으로 게임 회사에 근무하겠다는 목표하에 무작정 지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QA가 무엇을 하는건지, 테스트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향후 자신의 커리어 패스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팀에서만 유독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QA를 하는 파견직 친구들 중에서 게임 기획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참 많다.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에게 QA를 계속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뜻밖에도 기획을 하고 싶어서
QA를 한다는 답을 많이 듣게 된다. 심지어 2~3년의 경력이 있고 QA 업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친구들
조차 결국엔 기획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최근에 2년 정도 QA로 근무하면서 QA 업무에 적극적이고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파견직 친구를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려고 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며 거의 3개월 동안 그 친구의 파트장과 팀장님이 인사팀과 여러
번 실갱이를 벌이면서까지 힘겹게 마련한 자리였다. 그만큼 그 친구에게 거는 기대도 많았고, 하반기 팀 운영
방안도 그 친구의 정규직 인사 발령을 전제로 짜여졌다.
그러나 막판, 임원진 면접에서 그 친구는 정규직이 되면 QA가 아니라 기획팀으로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면 계약처럼 이미 스튜디오 기획팀과도 얘기가 끝나 있었다.
한 마디로 죽쒀서 개준 꼴이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스튜디오에서도 그 친구를 탐냈었고 그 친구도 QA를 하는 만큼이나 기획을 하고 싶어했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우리 팀에서 정규직을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결국 하고 싶은 것은 기획 업무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고, 팀에서도 당연히 QA를 계속 할것으로 생각하고 정규직을 추진해 준 것이었다.
그 친구의 말처럼, 파견직의 입장에서 정규직을 전환해 주는 데 쉽게 자기 입장을 솔직히 밝히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잘 평가해서 힘겹게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 팀에게 이런 식으로 자기 입장을
제시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원 이하 인사팀에서는 우리 팀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파견직 하나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 팀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팀장님은 그 일이 있은 날 집에서 혼자 술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해당 파트장은 그 친구와 한 마디 말도 하기 싫다고 한다.
모든 걸 다 제쳐두고 이런 인간적인 배신감은 어떻게 할 것이며, 사내에서의 팀 평가는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기획팀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우리 팀과 또 얼굴 마주치면서 계속 일을 같이 해야 하는데 그건 또 어쩔 것인가?
파견직들 사이에선 이번 일이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 기획팀에서 또 다른 QA 파견직 몇 명을 더 데려갈 생각이라는데, 그걸 허용한 경영진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팀 분위기는 완전 엉망이다. 최소한 정규직들 사이에서는 몇 년 동안 같이 근무했던 파견직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신감도 많이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얼 해야 하는 걸까? 결국엔 QA 업무가 회사에서도 아웃 오브 안중이라 이런 일을 겪는 걸까? 도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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