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중세시대? - '권한'과 '역할'에 대한 소고

2010. 7. 2. 15:56일상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 팀 리더에게 주어진 권한은 조직의 최고 책임자가 가지고 있는 전권을 조금씩 위임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원칙상 사내의 모든 행동은 조직의 최고 책임자에게 보고되고 결정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각 팀 리더들에게 권한을 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봉건제(封建制)라는 중세의 사회제도가 생각났습니다.

 

중세에 지방의 영주들이 왕권을 대행하는 대신, 조세와 공물 등을 바치던 제도였죠. 위의 이야기와 비교해 볼 때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팀장이 영주를 대신하고, “은 영지를, “보고와 팀의 성과가 조세와 공물을 대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팀장을 다스리는 대신, “보고와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얼추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왕이 지방 영주를 못 미더워해 영지를 떠나 자주 수도로 올라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영주가 해당 영지의 주민들을 다스릴 시간이 줄어들고 자연스레 민심은 이반되기 십상일 겁니다.

또한 왕이 지방 영주에게 무리하게 조세와 공물을 바치도록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영주는 자신의 권한을 보장받기 위해 주민들을 쥐어짜거나, 그게 아니라면 무리한 요구를 하는 왕에게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겠죠.

 

중세에는 이러한 권한과 책임이 모두 지배계급의 패러다임일 뿐, 사실상 일반 소시민들은 이런 권한과 책임이라는 개념을 거의 적용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실질적인 모든 권력의 기반이 되었음에도 그들에게는 그런 권한과 책임을 이야기할만한 의식도, 지식도 없는 시대였죠.

 

현대의 회사에서도 당연히 권한과 책임이 존재합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현대의 회사에서도 권력과 책임이라는 단어는 일반 사원들보다는 사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중세 봉건시대와는 달리 이제는 일반 사원들도 그들이 회사를 움직이는 기반이며, 그들이 곧 회사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현대의 회사라는 조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권한과 책임이라는 단어보다, 오히려 역할(Ro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장님은 사장님의 역할을, 일반 사원들은 일반 사원들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각각의 역할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장님의 역할은 한 회사의 대표로서 직원들이 원활하게 그들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조직이 최대한의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며, 사원들의 역할은 그들이 맡은 바 임무를 전문가적인 소양에 근거해 누구보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사장님과 사원의 역할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저는 모든 회사 구성원이 수행하는 역할의 비중이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장님의 역할이 사원들의 역할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사원들이 희생해서라도 사장님의 역할이 수행되어야 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사장님의 역할을 희생해 사원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성실하게만 수행할 수 있다면 굳이 권한과 책임을 따지지 않더라도 그 회사는 다른 어느 회사보다 잘 운영되리라 믿습니다.

 

직원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보고서를 받는 것이 임원의 역할인가요?

직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뭐가 부족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그것을 보충해 주는 것이 임원의 주된 역할 아닌가요?

내가 뭘 도와드리면 되나요?” 이 한 마디를 윗분들로부터 가장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모든 것을 제어하겠다는 것은 모든 것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사원들은 권력을 행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사장님이나 임원이나 신입사원이나, 모두 똑 같은 비중의 역할을 수행하는 같은 회사의 동료가 아닌가요? 저만의 생각인건가요?

 

그렇다고 임원분들이나 사장님을 같은 동료로서만 바라보고 존경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존경은 합의되지 않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정당한 역할의 수행에서 나오는 것임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원들의 존경을 받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사원들이 두려워하길 바라시는 건가요?

권력을 행사하시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분이 되실 것이고 역할을 수행하신다면 아마 존경을 받으실 겁니다.

 

저도 제 역할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높으신 분들도 존경을 강요하지 마시고, 우리 스스로가 존경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S> 높으신 분들이 본다면 괘씸죄로 짤릴만한 글이네요높으신 분들 열람 금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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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Icon O2010.07.03 15:19

    대자보로 출력해서 어디다 붙여드릴까요?^^ 태그가 예술입니다. 내가 뭘 도와드리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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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Icon 검은왕자2010.07.04 11:38 신고

      저도 참 하기 힘든 말이지만, 리더라면 항상 수시로
      팀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뭘 도와드려야 하나요?"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나요?"

      근데 팀원들이
      "너만 없으면 돼"... 이러면 어떡...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