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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회고] 지나온 회사에서 배운 것들

검은왕자 2019. 8. 13. 07:05

어느 덧 소프트웨어 테스팅의 세계에 몸을 담근 지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해 보고 내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던 회사와 동료들을 한 번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전국이 월드컵의 열풍에 빠져 모든 사람들이 붉은 악마가 되었던 2002년의 가을, 나는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한 대기업의 PC 연구소에서 테스터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지금은 기억속으로 사라진 컴팩과 IBM 노트북의 소프트웨어/하드웨어 호환성을 검증하는 것이 내가 테스터로서 수행해야 하는 첫 미션이었다. IBM 노트북의 경우 일본에 위치한 야마토 연구소에서 가이드를 전달받아 테스트를 수행했다. 컴팩도 별도의 테스트 케이스를 제공하고 테스트 환경을 구축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그저 결벽증에 가까운 외국인들의 업무 습관으로 여겼던 꼼꼼한 테스트 케이스와 가이드 문서들이 지금은 얼마나 완성도가 높은 산출물이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테스트 스탭의 마지막에 붙어있던 “30분 정도 Ad-hoc 테스트를 수행하라”라는 문구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테스트 업무를 처음 배우는 나로서는 이런 높은 완성도의 문서와 프로세스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테스트와 관련된 문서들이 어떤 원칙을 가지고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고 개인적인 원칙을 가지게 해준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 테스트 상황을 공유하는 회의에서 발견된 결함과 해결된 결함의 추이를 그래프로 표시하며 회의에 참여한 모든 인원들이 현재 프로젝트의 품질을 한 눈에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이후 테스트 리드 업무를 수행하면서 테스트 상황과 결과를 어떻게 동료들과 유관부서에 공유해야 하는 지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모든 테스트 스탭의 마지막에 붙어있던 '30분 정도 Ad-hoc 테스트를 수행하라'라는 문구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2007년 이직한 두 번째 회사는 중견 게임 개발사였다. 이 회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애자일 방식의 게임 개발이었다. 아직 애자일이란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을 무렵, 매일 아침마다 20 여명의 스튜디오 직원들이 모여 스크럼 미팅을 진행했다.  각 부서 별로 해야할 업무를 포스트 잇에 적어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붙였다. 그리고 이를 To Do, Doing, Done, Backlog로 분류하고 상황에 맞게 이동시켰다. 하나의 포스트 잇이 Done 항목으로 이동될 때마다 모든 참석자가 박수를 치면서 업무가 완료된 것을 축하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무척이나 간단하고 효율적이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진행 상황 뿐만아니라 유관부서의 업무 진행 상황까지 한 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구적이고 체계적인 업무 스타일을 중시하는 팀장님 덕분에 소프트웨어 공학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내가 소프트웨어 테스터로 일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스스로 공부하는 QA가 되기 위해 QA팀은  매주 금요일 오후 소프트웨어 테스팅이나 게임 개발과 관련된 주제로 스스로 공부한 것들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팀장님의 권유와 소개로 외부의 스터디 그룹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도 내겐 행운이었다. 게임 뿐만아니라 다른 도메인의 다양한 QA 종사자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 오전 소프트웨어 공학과 관련된 원서를 번역하고 발표하는 스터디를 진행했다. 함께 몸담고 있는 소프트웨어 테스트 직종에 대해 각자의 고민을 토로하고 그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업계의 지인들 중에는 이 스터디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이 많다. 

세 번째 회사는 당시 대기업 소속의 게임 개발/서비스 회사였다. 말 그대로 대기업의 성격과 게임 회사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체계적인 의사결정과 조직관리 등의 면에서는 대기업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고 게임 개발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조직에서는 조금 더 유연하고 원활한 의사 소통이 가능해 조금 더 부드러운 업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게임의 기능뿐만 아니라 게임 서버의 성능과 같은 비기능적인 품질 요소를 관리하는 전담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다양한 품질 관점에서 게임 서비스를 관리했다. 무엇보다 모바일 게임 초기 시장을 경험한 것이 내겐 큰 자산이었다. 이제 막 모바일 게임 시장이 부화하는 시기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아이폰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하나 하나 물어보고 공부하면서 애플 개발자 환경을 설정했던 것, 카카오톡의 검수 기준 체크리스트를 하나 하나 거의 외우다시피 하면서 분석했던 것, PC 게임 테스트를 할때보다 더 지표와 마케팅 관련 항목들을 공부하고 이를 업무에 반영해야 했던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결국 내가 몸담았던 이 회사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글로벌한 모바일 게임 업체로 성장했다. 

네 번째 회사는 게임 엔진으로 유명했던 외국 게임 회사의 한국 지사였다. 이 회사가 개발한 FPS 게임의 국내와 중국 서비스 QA 리드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외국계 기업의 해외 지사에서 처음 일하게 된 만큼 언어 장벽이 만만치 않았다. 재직하는 기간 내내 출근 시간 전 짬을 내어 영어 학원을 다녔다. 국내 지사에도 외국인 엔지니어들이 있었고 유럽과 중국의 엔지니어와도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어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영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만 해도 큰 혜택이었다. 
QA 업무에 대한 평가와 위상이 국내 기업과 다른 것도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한 번은 외국인 개발자가 내게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었다. 왜 자기가 만든 코드와 기능을 제대로 테스트해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필요하다면 테스트 코드를 작성해 주고 사용법도 알려주겠다고 했다. 개발자 혹은 개발부서에게 `테스트를 수행하려면 이런 저런 것들이 언제까지 필요하니 꼭 달라`고 부탁하고 재차 삼차 확인하던 이전의 경험과 너무 달랐다. 산출물에 대해 테스트를 수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테스트를 수행했는데도 결함이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개발자인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QA를 하는 당신이 너무 필요하고, 당신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고 QA로서의 내 역할과 아이덴티티를 다시 한 번 확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개발자인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QA를 하는 당신이 너무 필요하고, 당신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고 QA로서의 내 역할과 아이덴티티를 다시 한 번 확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다음 회사는 새롭게 시작하는 게임 테스트와 운영, CS 아웃소싱 회사였다. 국내에서도 게임 개발 환경이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화되고 세분화되기 시작했고 그에 걸맞게 QA 아웃소싱에 대한 니즈도 커져갔다. 아웃소싱 회사의 게임 테스터들은 동종 업계의 다른 아웃소싱 업체의 인력들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게임 QA를 수행하는 회사의 인력들과도 산출물의 품질로 경쟁할 수 있어야 했다. 결국은 QA 업무에 대한 애정과 실력이 가장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조직원들 스스로 공부하고 발전하지 않으면서 산출물의 품질이 좋아지기를 바랄수는 없었다. 정기적으로 교육과 스터디를 병행하고 자격증 취득을 권장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의 역량이 곧 나의 역량이었다. 나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서 동료들에게 공부를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기 역량을 개발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간단하지만 지키기는 너무나 힘든 원칙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는 시기였다. 

인연이란 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력서 상의 두 번째 회사이자 내게는 첫 번째 게임 회사였던 곳으로 다시 이직을 했다. 판교에 위치한 게임 회사에서 70명에 달하는 QA 조직을 맡게 되었다. 지금 그 시기를 되돌아보면 스스로가 너무 나태하고 안이했었던 것 같다. 앞선 회사에서 깨닫고 체득했던 모든 것들을 이 조직에 구현해 보려고 했으나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유관부서에 QA의 역할을 부각시키지 못했고 인력과 성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에 파묻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시도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내 주위와 동료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인지하면서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원리는 유지하되 환경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QA 업종을 떠나서 모든 일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끊임없이 스스로 움직이고 올라가려고 하지 않으면 쉽게 자기 만족이라는 늪에 빠지고 만다. 

"끊임없이 스스로 움직이고 올라가려고 하지 않으면 쉽게 자기 만족이라는 늪에 빠지고 만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에서는 앞서 내가 체험했던 모든 곳에서의 경험과 원칙을 이 곳의 환경에 맞게 적용해 보려고 하고 있다. 회사가 기술 친화적이고 개방적인 업무 환경이어서 QA와 관련되어 새로운 것을 공부해보고 시도해 보기에 더할 나위 없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역시 QA 업무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혼자가 아닌 다같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다. 업무 시간이 끝난 야간이나 주말에도 스스로 사무실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모여서 그룹 스터디를 진행하는 모습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성장과 발전에 대한 욕구가 남다른 동료들 사이에서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지금의 회사만이 내게 줄 수 있는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에너지와 인프라를 기반으로 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QA 조직이 어느 정도나 발전할 수 있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국내에서도 게임 업계와 소프트웨어 테스트 업계가 20년 가까이 함께 성장해 오면서 업무 환경과 인식 자체가 많이 바뀌고 성장한 것 같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일관되게 이어오는 원칙은 스스로가 먼저 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항상 깨어있는 소프트웨어 테스터, QA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오랜 시간 함께 해주면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모든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Happy Test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