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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The Game of my life

<검은 신화:오공>

<검은 신화:오공> (GameScience, 2024)
 

<검은 신화:오공>을 히든 보스를 포함해 1회차 플레이를 끝내고, 2회차를 진행 중이다. 사실 소울 장르의 명작으로 자리잡은 <엘든링>을 사놓고 첫 보스조차 만나지 못했던 터라, 이번에는 선뜻 ‘구매’ 버튼을 누르기 어려웠다. 게임 커뮤니티에는 ‘오공은 소울은 아니다’, ‘오히려 <갓 오브 워>에 가까운 액션 게임이다’, ‘그래도 쉽게 즐길 게임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난이도와 장르 정체성에 대한 논란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며칠 동안의 고민을 한 순간에 해결해 준 건 바로 게임 인트로 영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상상해 오던 바로 그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사천왕과 천군을 대동한 이랑진군과 맞서 싸우는 10분 남짓한 영상이었다. 게임 인트로 자체의 퀄리티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인트로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전장을 실제 게임에서 어떻게 그려낼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소울과 액션 사이 어디쯤의 난이도, 그리고 난이도 조절이 되지
않는 게임이라 몇몇 보스는 유튜브 영상과 블로그를 찾아가며 며칠을 걸려 공략했어야 했다. 아무래도 보스전이 메인 콘텐츠일 수 밖에 없는데, 각 보스마다 독특한 전투 진행 방식을 가지고 있고(이를테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용은 지면에 가까워 졌을 때 공략을 해야한다던가…, 특이한 법보를 써야한다던가…), 수많은 패배를 겪으면서 보스의 전투 패턴을 학습해야 했다.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보스를 무릎 꿇릴 때의 쾌감과 성취감도 컸다.

<서유기>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몰입할 수 있는 게임 스토리도 좋았다. <서유기>를 다룬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코믹하게 그려지는 저팔계 역시 이번 게임에서도 감초 역할을 톡톡하게 수행했다. 게임 중간 말많은 저팔계를 뒤로 하고 필드를 뛰어가면 ‘내 이야기 좀 들어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게임 캐릭터가 플레이어와 수행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게임 월드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소하지만 인상적인 장치였다. 노멀 엔딩인 ‘제천대성의 빈 육체’ 전투에서는 주인공 캐릭터가 자신을 이을 후계자임을 인지한 보스(제천대성의 빈육체)가 손에 인정을 두는 모습도 보인다. 결국 이 엔딩 보스를 잡으면 보스가 쓸쓸하게 웃으면서 퇴장한다. 게임 곳곳에서 이렇게 게이머의 감성을 북돋워 주는 세밀한 연출들이 돋보였다.

1회차 플레이를 완료하는데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히든 보스를 공략하려면 스토리 중간 중간의 숨어있는 히든 미션도 완료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2회차, 3회차를 진행도록 만드는 게임 시스템 설계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n회차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도 있고, 특히 3회차 이상을 진행해야 얻을 수 있는 ‘제천대성 모드’의 강력함을 최종 보스 부분에서 맛보기로 보여주어 ‘꼭 저 모드를 얻고 싶다’라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 준다. 전반적으로 게임이 어렵지만 그래도 계속 플레이를 이어가고 반복하게 해주는, 사용자 경험을 고려한 게임 시스템 설계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왔다.

10여 년전 업무차 텐센트를 방문해 보고 중국이 게임 시장에서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열정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수 천년 역사 속에 꽃피운 다채로운 문화 콘텐츠들이 강력한 기술력과 결합한다면, 중국 게임이 전 세계의 게임 시장에서 의미있는 자리를 차지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중국이 출시한 첫 AAA 게임인 <검은 신화:오공>은 이미 그런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제천대성이 천계를 뒤흔들었듯이, 중국 게임의 화려한 데뷔가 <검은 신화:오공>으로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