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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BasketBall Diary

The First SlamDunk 관람기

The First SlamDunk

1. 보는 내내 행복했다. 30년 동안 보지 못했던 강백호와 송태섭, 서태웅, 정대만, 채치수, 북산 팀은 여전했다. 소연이와 한나, 안 감독님도 잘 지내고 있는듯 했다. 이들을 다시 만나니 정말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6년의 시카고 불스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이 2시간 만큼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2. 가장 먼저 와 닿았던 송태섭이 형과 일대일을 하는 장면. 무엇보다 고무공 소리가 귀에 박힌다. 별 것 아닌 사운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정말 농구를 사랑하고, 농구를 아는 사람이 만든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무공이 코트에 튕기는 순간 순간 들리는 저 특유의 소리, 정말 생생했다. 영화 내내 플레이를 묘사하는 사운드와 모션이 자연스러워서 충분히 몰입될 수 밖에 없었다. 후반부 송태섭이 산왕의 존 프레스 더블 팁을 드리블로 뚫고 나가는 장면도 너무 좋았다.     

 

3.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송태섭의 오리지널 스토리와 산왕전을 엮어서 풀어낸 영화 구성도 인상깊었다. 송태섭의 오리지널 스토리는 마치 친한 친구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어릴적 힘들었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주는 친구에 대한 이해와 호감이 더 쌓이듯이, 송태섭의 내러티브가 쌓이면서 훨씬 더 그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커져갈 수 밖에 없었다.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한 편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뿐더러, 그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시간대를 다이나믹하게 보여준 <슬램덩크>라는 단행본이 얼마나 좋은 콘텐츠였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4. 특별한 효과 없이 긴장감 넘치는 산왕전을 풀어나간 것도 마음에 들었다. 수 백 번을 본 만화라 그 다음 장면, 그 다음 대사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면서도, 정우성의 파이널 샷 장면에서는 숨을 죽이고 스크린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결과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집중하고 즐거울 수 있었을까?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만화가로서 뿐만아니라,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출중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5. 영화가 끝나고 드는 이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감정이 과연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다. 한 마디로 정의해 보려고 노력했던 이 감정은 다름 아닌 ‘행복함’이었다. 30년이 지났지만 <슬램덩크>가 주는 그 감정은 내겐 여전히 행복함이었다. 단행본 만화에서 보여준 투박하지만 세련된 그림체가 30년 세월을 지나 훨씬 고급스러운 에니메이션으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철없던 10대의 마지막과 불안했던 20대 초반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보며 느꼈던 덜익은 일탈과 조그맣던 행복이 세월을 지나 지금 이 순간에는 조금 더 농익은 행복함으로 다가왔다. 다음에는 다른 멤버의 이야기를, 다른 매치업과 함께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풀리면 오랫만에 다시 농구공을 들고 코트로 나가봐야겠다는 생각도.    

 

PS> 자막에 ‘산왕’을 ‘산양’이라고 적은 장면이 많아서 아쉬웠다. 원작에서도 강백호가 '산왕'을 '산양'이라고 발음하는 장면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